옳음과 집착의 경계
옳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과 상대방을 내 뜻대로 바꾸려는 집착 사이의 경계를 생각해 봅니다.
이 글의 목차
살아가다 보면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보고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잘못된 행동인 것 같은데 정작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아무리 설명해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 사람도 있죠.
그럴 때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저렇게 행동하지?’
‘이렇게 하면 되는 걸 왜 굳이 저렇게 하지?’
‘분명히 잘못된 행동인데 왜 고치지 않는 걸까?’
그래서 상대방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설명하거나, 더 나은 방법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제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설명해야 할까요? 이해할 때까지 설득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맞을까요?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하던 중 불교에서 다루는 집착이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고, 그동안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1.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옳은가?
우선 가장 먼저 생각해 볼 것은 내가 옳다고 판단한 것이 실제로도 옳은가 하는 문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합니다.
문제는 그 지식과 경험이 언제나 정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제가 알고 있는 정보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 상대방은 제가 모르는 사실을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같은 상황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판단이 상대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명백하게 잘못된 행동도 존재하고, 충분한 근거를 통해 어느 쪽이 더 타당한지 판단할 수 있는 문제도 많습니다.
다만 내가 옳다고 확신하는 것과 실제로 옳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충고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판단부터 검토해야겠죠.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정확한가? 충분한 근거가 있는가?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가?
이러한 과정을 거친 뒤에도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때 상대방에게 알려주면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제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것 역시 인정하고 수정해야 할 것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과 실제로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보다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2. 옳은 말을 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상대방에게 알려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옳은 말을 했다고 해서 상대방이 반드시 그 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 부분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고, 그 행동이 왜 잘못되었는지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설명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설명이 부족했나 싶어서 다시 설명할 수도 있고, 다른 예시를 들어가며 이해시키려고 노력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렇게 해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여기서부터 문제가 조금 달라집니다.
저는 상대방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려줄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적절한 방법으로 설명할 수도 있죠.
하지만 상대방이 제 설명을 받아들일 것인지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상대방은 제 설명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이해하더라도 동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동의하면서도 실제 행동은 바꾸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결과만으로 제 판단이나 설명이 잘못되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물론 제 설명이 부족했거나 잘못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그 부분은 다시 검토해야겠죠.
그러나 모든 것을 검토한 뒤에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상대방의 선택입니다.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상대방이 결정해야 할 일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언제까지 설득해야 할까?
여기에서 또 다른 의문이 생겼습니다.
상대방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더 이상 설득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양심을 저버리는 행동이 아닐까요?
상대방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과연 옳은 행동일까요?
처음에는 자신이 옳다고 판단한 것을 끝까지 알려주고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양심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상대방에게 잘못을 알려주는 것과 상대방이 반드시 그 잘못을 고치도록 만드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니까요.
처음에는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충고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같은 말을 반복하고,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화가 나고, 어떻게든 자신의 생각을 따르게 만들려고 한다면 어떨까요?
어느 순간부터는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반드시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매달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더 이상 상대방을 위한 행동이라고만 볼 수 없겠죠.
그렇다고 모든 충고를 한 번만 하고 끝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했다면 다시 설명할 수 있고, 기존의 방법이 효과가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멈추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과 상대방이 반드시 설득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4.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던 중 불교에서 다루는 집착이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집착은 어떤 생각이나 대상에 매달리며 놓지 못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무언가가 반드시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마음도 여기에 해당하겠죠.
상대방의 생각이나 행동은 제가 원하는 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제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도 나중에는 받아들일 수 있고, 반대로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반드시 상대방이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결국 제가 결정할 수 없는 결과에 스스로를 얽매는 셈입니다.
그제야 제가 고민하던 문제도 불교에서 말하는 집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상대방에게 잘못을 알려줄 수 있고, 더 나은 방법을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계속해서 노력하는 것도 가능하겠죠.
다만 내가 노력했으니 반드시 원하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무척 소극적인 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오히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구분하는 태도에 가까웠습니다.
5. 집착하지 않는 것과 방관하는 것은 다르다
여기에서 한 가지를 더 생각해 봐야 합니다.
상대방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잘못된 행동까지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잘못된 행동은 여전히 잘못된 행동이고, 상대방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옳은 행동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특히 상대방의 행동으로 인해 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럴 때는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거나, 필요한 경우 명확하게 대응할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과 실제로 발생하는 문제에 대응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고 해서 그 행동으로 발생하는 피해까지 감수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상대방을 억지로 바꾸려고 할 필요도 없겠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되, 그 사람이 반드시 제 생각대로 변해야 한다는 기대에는 매달리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않는 것도, 잘못을 방관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과, 그 행동의 결과가 반드시 내 뜻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별개라는 뜻이었습니다.
6. 이번에 배운 것
이번에 생각을 정리하면서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저는 제가 옳다고 판단한 것을 상대방에게 알려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판단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므로, 그 판단과 전달 방식 역시 계속 살펴봐야겠죠.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적절하게 충고했더라도 상대방이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결과가 곧 저의 잘못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올바른 행동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같은 노력을 반복하는 것이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찾거나 멈출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이 잘못된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 행동까지 옳다고 인정할 필요는 없으며, 그 행동으로 저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발생한다면 필요한 조치를 취하면 됩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반드시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 저 자신을 속박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양심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양심에 따른 행동과 결과에 대한 집착을 구분하는 것이니까요.
어찌 보면 정말 별것 아닌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되, 다른 사람이 반드시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저는 이 당연해 보이는 사실 하나를 이해하는 데 무려 20년이나 걸렸습니다.
20년이나 걸려서 겨우겨우 배웠다는 것이 조금 우습기도 하네요.
더 큰 문제는 이제 겨우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머리로 이해했다고 해서 실제 상황에서도 언제나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실제로 비슷한 상황을 마주한다면 또다시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애쓰거나, 제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답답함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이것을 완전히 체득하고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응용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더 걸릴지는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무언가를 배웠다고 해서 그 즉시 완벽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허구의 세상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죠.
그래도 적어도 무엇이 문제였고, 앞으로 무엇을 바꾸어야 할지는 알게 되었습니다.
이해하는 데 20년이 걸렸으니, 실천하는 데는 또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네요.